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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채우는 공터...
끝나는 길 끝이 있는 줄 알면서도이 길을 가야만 할까 가다 보면 막혀서더는 갈 수 없는 길인데그래도 가야만 할까 가다 보면 다른 길로갈 수 있을까희망을 품어보아도결국은 끝나는 길인데 알면서도 가야만 하는끝이 정해진 길로간다, 나는 간다 그 길의 끝이 내가마쳐할 곳인가 보다
신발을 벗고 두 발을 잡아당기는끈적한 중력 지긋지긋한 세상에사로잡혀버린 나의 몸뚱아리 누가 채운 것인가족쇄같은 신발 그렇구나신발이었다 중력에 붙잡힌 것은내 몸뚱아리가 아닌신발이었다 신발을 벗자견디기 힘든중력을 벗자 삶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을영혼이 이렇게 가벼운 것을 왜 그토록 어려웠던가 마지막 작별을 하고 가지런하게신발을 벗자
잊고 싶어도잊을 수가 없어서잊지 못 해서잊혀지지 않아서참고 울고울고 참고다시 울고눈물이 뺨에 손에 가슴에나이테처럼 쌓이고 쌓인후이제 묻으련다잊을 수가 없어서잊혀지지 않아서마음에추억에묻었다
너는봄처럼 다가와여름처럼 머물더니가을처럼 사라졌다겨울이 너무나빨리 왔다
이름 있는 건축물, 멋드러진 조경의 나무, 역사적인 현장, 명소요즘 웬만한 곳에는 다양한 이름과 낙서가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무엇을 위해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려 했을까? 동화나 옛 이야기에서 서로의 이름을 적고 미래를 약속하는 장면을 종종 보고는 했다.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감성적 동요를 느꼈으리라.아마 이러한 기억의 작용으로 사람들은 어딘가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며 그러한 감성을 다시 느끼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그러나 그것이 감성일까? 새겨진 이름이나 문구를 보면 때로는 저속한 표현이 남발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장소를 보면 굳이 이곳에 이러한 행동을 해야만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도 가끔은 내 이름을 새겨두고 싶을 때가 있다.때로는 누군..
나는 강요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물론 강요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내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강박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내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강요받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사실 채식을 시작한 중요한 이유였는지 아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현재까지 채식을 고집하는 이유 중 중요한 하나의 이유임에는 틀림없다.특히나 고집스럽게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사실 나는 그다지 철저한 채식주의자일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조금이라도 채식을 벗어날 경우(실수나 무지에 의해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것을 굉장한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난을 한다.채식주의자가 채식을 포기하든 채식 중 육류 섭취를 하든 어째서 비난받아야 할 ..
2011년 9월 25일은 내 친구 원철이가 결혼한 날이다. 원철이가 결혼하기 전 날 우리는 모텔 방에 모여 있었다. 신부 집이 있는 포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에 다들 포항으로 달려온 탓이다. 사실 일찍 와서 마땅히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원철이가 우리 친구들과 또 다른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십여 명 만을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하루 전에 와서 자고 결혼식에 참여하게 배려했기 때문에 하루 일찍 온 것 뿐이다. 물론 일찍 와서 도와줄 것이 있다면 도우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가 신경쓰지 않도록 스스로 다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딱히 할 일이 없는 우리는 초대된 하객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각 그룹의 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방으로 들어와 우리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요즘 즐겨보는 TV 방송이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가수들끼리 경연을 하는 정규방송이다. 이 방송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자세한 사항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쨋든 이 방송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부터 나를 가장 심란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등수를 매기는 것이었다. 나처럼 비전문가가 등수를 정해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는 등의 저자세를 취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각의 가수들이 장단점이 달라 듣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뿐이지 누구는 못 하고 누구는 잘 하고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씩 가수들의 상태에 따라서 누군가 좀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누군가 제 실력에 미치지 못 하는 경우가 있기에 등..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사뭇 다르다. 누구는 자연을 위해서라고 하고 누구는 세계 기아를 생각해서라고도 하고 누구는 생명 존중을 위해서라고도 한다. 내 경우는 나의 얼굴에서 인간의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본 것이 그 계기였다. 남들이 왜 채식을 하냐고 묻는 것이 달갑지 않은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발단에 대해서 적는 것은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나름대로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는데 예전과 달리 얼굴이 통통해졌다고 느껴졌었다. 통통해도 괜찮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살펴 보는데 이게 과연 원래 내 얼굴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찬찬히 뜯어보니 그것은 원래 내게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군살이라고..
누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이다. 나는 내 생일에는 무관심하면서도 내가 언제 죽게 될 지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 또한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너무나 궁금하다. 언젠가 죽는 다는 것은 매우 공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죽는 날을 학수고대 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 하겠다. 사실 죽고 싶다면 당장에 옥상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고, 자신의 심장에 칼침을 넣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찌되었건 내 관심사 중 상당 부분은 이 죽음에 관련이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죽는 날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전에 우리의 죽음은 정해진 것인지 우연한 사고인지 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죽음이라는 것은 ..
"모르면 무식하다더니 나는 몰라서 무식해지지 말자" 친구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저런 글귀가 달렸다. 여기서 '모른다'는 것이 '무식'임을 집고 넘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뜻을 연이어 사용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그런 국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단지 우리는 모두 '무식'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 인간들이 알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배우지 않은 것, 보고, 듣고,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무식하다. 단지 자신이 아는 분야에서만 유식하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아는 것마저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식하면서도 무식한 줄도 모르는 무식쟁이들인 것이다. ..
가끔 지식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의 믿을 수 없는 맹신을 목격하고는 한다. 그것은 바로 "긍정의 힘"을 믿는 다는 것이다. 특히나 자신을 진보라 여기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상당히 짜증이 난다. 사회가 "긍정적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이유가 뭘까? "부정적 사고방식"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상대방을 옭아매기 좋은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부정적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어떤 일을 할 때 "~한 이유로 힘들것 같다."같은 의견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긍정적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긍정적인 사람(?)"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 주장하는 "긍정적 방안"은 맹목이다. 이런 "부정..
우리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 사회주의를 꿈꾼다. (여전히) 반공을 부르짖는 이 나라에서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정심과 공정심을 가지고 있어서 만인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단지 자본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남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상하리만치 경쟁을 좋아하고 그 경쟁에서 남보다 우위에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결국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는 인간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났을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은 단지 인간이 악한 존재로만 살아가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양심이라는 것을 주..
길이 있어야만 길을 갈 수 있다 생각했다. 지나고보니 내가 길을 만들었구나 거친 들판 지평선 위에는 길이 없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내가 지나친 대지 위를 따라 길이라는 것이 생겼더라 키 큰 풀 숲으로 걸어 들어갈 때는 앞을 볼 수 없어 두려웠는데 등을 돌려 지나온 곳을 보니 내가 길을 만들었더라 길이 있어야만 길을 갈 수 있다 생각했는데 내가 만든 길을 따라 사람들이 다닐 수도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