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채우는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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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30 - 채식의 시작

그냥보기 2011. 7. 30. 02:43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사뭇 다르다. 누구는 자연을 위해서라고 하고 누구는 세계 기아를 생각해서라고도 하고 누구는 생명 존중을 위해서라고도 한다. 내 경우는 나의 얼굴에서 인간의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본 것이 그 계기였다.

남들이 왜 채식을 하냐고 묻는 것이 달갑지 않은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발단에 대해서 적는 것은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나름대로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는데 예전과 달리 얼굴이 통통해졌다고 느껴졌었다. 통통해도 괜찮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살펴 보는데 이게 과연 원래 내 얼굴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찬찬히 뜯어보니 그것은 원래 내게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군살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단순히 살이 붙었다기 보다는 얼굴에 고기덩어리가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약간 소름이 끼쳤다. 좀 더 바라보고 있자니 이것이 살이 아니라 욕심 덩어리가 자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살이 찌고 기름이 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원래 고기보다는 나물류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나물을 많이 먹을 때는 아무리 많은 음식을 먹어도 얼굴에 살이 오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나 군대 가기 전 사진을 보면 그렇게 먹고도 얼굴은 갸름했었다. 군대를 제대했을 때의 사진은 군대에서의 고생과 강제적으로 짜여진 식단에 의한 것이었기에 예외로 하였다. 어찌 되었든 제대 후 점점 육식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는 하루에 수 시간을 농구 등 운동에 사용했기에 살이 찔 틈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 부터 얼굴에 기름기가 돌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친구들과 자주 농구를 했었지만 점점 살이 붙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살이 찌거나 하지는 않았다. 체질이 잘 잡혀서인지 매우 천천히 몸이 불기 시작했고 몇 년 간은 살집이 생기는 것을 느끼지 조차 못 하면서 몸무게만 서서히 늘어갔다. 매년 거의 1Kg씩 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73Kg이던 몸무게는 2010년 초에는 80~82Kg을 왔다갔다 할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졸업을 2003년에 했으니 1년에 1Kg씩 늘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찌기 시작했기에 내가 살이 찌고 있다는 생각을 그다지 하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이때문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얼굴이 둥글둥글해진 것은 단지 나잇살로 치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어난 몸을 보면서 내가 어떤 것들을 먹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보기 싫게 뚱뚱해지거나 하지도 않았거니와 평범한 체구의 30대 였을 뿐이지만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고 그렇다고 마르지도 않는 축복받은 몸이었던 내게는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식단에 대한 고민도 하였던 것 같다.
어쨋든 먹는 것들을 생각해 보니 대부분이 육식이었다. 비록 김치와 같은 밑반찬도 먹고 다양한 종류의 반찬을 섭취하기는 하지만 밖에서 먹는 음식이나 집에서 먹는 음식, 사람들과 만나서 먹는 음식이 대부분이 육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육류를 과하게 섭취하기 시작하면서 욕심까지도 섭취하고 있음을 또한 깨닫게 되었다. 나 혼자 삼겹살을 먹을 때 밥 한 공기에 삼겹살 한 근을 너끈히 먹었다. 그것도 채소와 함께 먹는 것 보다는 그냥 기름장이나 소금이나 고추장만을 찍어서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나 아무것도 없이 단지 고기만 먹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고기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먹는 모습은 또 얼마나 게걸스러웠을까? 상상해보니 마치 탐관오리가 백성의 재물을 탐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살찐 얼굴도 덕이 붙은 것이 아닌 욕심이 들러붙어 이렇게 부은 얼굴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욕심 가득한 인물이 거울 속에서 나마저도 잡아먹을 것처럼 서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서웠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채식을 한 것이 아니었다. 고기를 줄여보고자 했다. 그러나 고기를 줄인다는 것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욕심을 줄여보자는 생각과 같았다. 욕심을 부리는 것은 쉬워도 욕심을 자제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것이 육식을 줄이려고 하면 수많은 유혹에 결국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나는 여지껏 육류를 줄이겠다고 해서 성공한 사람을 보지 못 했다. 물론 그것이 내 개인적인 통계이므로 반드시 그렇다라고 억지를 부리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주위에 그런 식으로 성공한 사람이 없는 이유를 나도 그렇게 해보니 알 것 같기에 제시한 것이다. 고기를 줄이자라고 생각했었지만 먹다보면 더 굽고 더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했다. 다시 거울을 볼 때 마다 너의 욕심은 어째서 줄지 않는 것인가 하는 원망만 해댔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이것이 욕심이라면 욕심 자체를 없애버리자. 욕심내서 좋을 것이 무엇인가? 결국 욕심은 내 자신의 파멸만을 불러올 것이다."라는 다짐이었다. 욕심은 내 자신을 욕심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기만 하였다. 더 많은 욕심을 채우려 안달나게 만들었었다. 그래서 아예 끊어버리자 생각했을 때 오히려 그 유혹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아예 손을 대지 않으니 점점 입맛도 변하였다. 육류 섭취를 많이 할 때는 달고 짜고 매운 것들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육류를 피하였더니 너무 단 것도 싫고 짜거나 매운 것도 입에 맞지 않게 되었다. 그 동안 이런 것들도 내가 좀 더 달게 먹고 싶어하고 좀 더 많은 조미료를 원하는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현 세대 또한 각자의 욕심에 사로잡혀 더 맵고, 더 달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육식을 끊음으로써 매워도 맛있게 매운 것과 자극적으로 매운 것을 구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맵지 않게 먹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단 것은 먹다보면 입안이 불쾌해지고 입맛이 되려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단 맛은 과일의 단 맛과 채소나 곡식의 단 맛이 좋아지게 되었고 설탕이나 화학적으로 첨가된 당 종류는 기피하게 되었다.

이렇게 채식을 하게 되고 입맛이 변하다 보니 점점 담백한 맛을 찾게 되고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것들을 피하게 되었다. 요즘 다시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많이 갸름해졌다. 아직도 이전의 얼굴이 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자꾸만 살이 많이 빠졌다고 신기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살이 많이 빠진 것도 아니다. 아직도 몸무게가 75~78Kg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비해서 몸무게의 변화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러나 80일 때의 몸과 지금의 몸, 특히나 얼굴을 비교해보면 놀랄만한 변화가 있다. 나는 몸무게의 변화가 적은 이유는 살이 아니라 욕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욕심이 떠나면서 나의 몸도 일부러 비대해 보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지려는 것은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심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욕심이 없다면 몸은 적당한 크기만을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모뭄게가 줄지 않더라도 덩치는 알맞게 작아져도 되는 것이다. 얼굴도 내가 고기를 많이 섭취한다는 듯 둥그스레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게 그런 욕심이 있지 않으니 기름낀 얼굴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보니 얼굴도 점점 갸름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것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나를 채식으로 이끌었고 채식의 결과로 나는 나날히 군살 없는 몸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단 1년의 채식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육식 뿐 아니라 인간사에 대한 욕심도 사라지고 있다.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채식을 했던 이유도 이런 인간사에 대한 욕심을 떠나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