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채우는 공터...

20110927 - 당신이 더불어 살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본문

끄적끄적/산문

20110927 - 당신이 더불어 살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냥보기 2011. 9. 27. 01:51





2011년 9월 25일은 내 친구 원철이가 결혼한 날이다.

원철이가 결혼하기 전 날 우리는 모텔 방에 모여 있었다. 신부 집이 있는 포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에 다들 포항으로 달려온 탓이다. 사실 일찍 와서 마땅히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원철이가 우리 친구들과 또 다른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십여 명 만을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하루 전에 와서 자고 결혼식에 참여하게 배려했기 때문에 하루 일찍 온 것 뿐이다. 물론 일찍 와서 도와줄 것이 있다면 도우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가 신경쓰지 않도록 스스로 다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딱히 할 일이 없는 우리는 초대된 하객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각 그룹의 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방으로 들어와 우리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 방에 쌓아둔 술과 안주들을 다른 방에도 나눠줘야 한다며 원철이는 우리에게 옮겨줄 것을 부탁했다. 여차여차해서 후배 커플에게 약간의 술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 때 다음 날 있을 결혼식을 위해 휴식을 취하려던 원철이를 잡은 것은 관중이었다.
관중이는 온 김에 우리 방에 가서 얘기나 좀 하다가 가라고 했다. 특히나 앙금이 있는 두 사람, 주빈이와 원철이의 아내가 될 현서씨가 서로 화해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거진 일 년을 그렇게 화해하지 못 한 두 사람이 오늘이라고 화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런 구경을 좋아했다. 그래서 돌려보내기 보다는 옆에서 바람잡이를 하였다.
사실 이것이 나와 관중이가 저지른 실수일 것이다.

우리 6명이 있던 방에는 원철이와 신부가 될 현서씨, 그리고 원철이의 다른 친구까지 합쳐 9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빙 둘러 앉게 되었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할 것인지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굳이 기억하려 애 쓸 필요도 없다. 어쨋거나 이렇게 모인 이유는 주빈이가 저질렀던 행동에 대해서 주빈이와 현서씨가 서로 앙금을 풀기 위해서였다. 고로 우리는 주빈이가 그냥 잘못을 사과할 것을 약간 강요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때 나는 주빈이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과하고 어영부영 넘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보다는 주빈이가 그 때 왜 그랬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감정에는 더 큰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고약하게도 그것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다. 약간의 상상으로는 화해보다는 아물 수도 있었던 앙금이 되려 커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흥미롭게 지켜보려 했던 것은 내가 중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서 주빈이의 잘못에 대해 옹호를 하기도 하고 질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수준" 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원철이가 이 "수준"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내될 사람을 비하하고 있다는 것에서 나는 크게 당황하였다.

원철이가 한 말을 요약하면 "내 수준이 이렇기에 내 수준에 맞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무심코 흘려 넘길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원철이가 그 이야기를 하기 전부터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수준"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단어를 어떻게든 막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 "수준"이라는 단어가 나온 까닭은 원철이의 아내될 현서씨가 주빈이에게 "내가 원철이 오빠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이냐?"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아마도 주빈이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현서씨에게 "수준 떨어진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얘기는 갑자기 이 "수준"이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 날 내가 한 "수준"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 풀어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살면서 수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친구가 되고 원수가 되기도 하며  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그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가족이다. 이런 가족은 서로의 "수준"으로 구성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더 높은 학식을 가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와 "수준"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이 아닌 것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가족은 "수준"이 아니라 "조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행해보이고 다툼이 잦아 보이는 가족들도 그 안에서 어울리며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수준"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수준"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허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누군가 "수준"을 따질 때는 자신을 비하하거나 남을 비꼬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로 사용될 것이다. 내가 이정도이다. 혹은 나의 누구는 이만한 수준을 갖추고 있다 등등. 그러니 이 수준이라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자기 가족이나 가족이 될 사람, 자신의 친구들을 어떤 수준으로 분류를 한다는 것은 잘난 척 혹은 자기비하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 원철이가 했던 말은 잘난 척이 아닌 비하의 의미로 쓰였다. 원철이 스스로는 그런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자신과 결혼할 여자가 자신의 친구에게 "수준 낮다"라는 말을 들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절대로 "내 수준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어감으로 이야기해서는 아니 되었던 것이다. 내가 당황했던 이유도 차라리 허세를 부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상관 없지만 원철이가 했던 말이 자기비하의 의미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자기비하라면 간접적으로 자신의 아내 될 사람을 비하한 꼴이 되기에 또한 주빈이가 이야기했던 "수준 낮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수준"을 따질 이유는 없다. 그것은 단지 허세나 비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뱅크시의 낙서 예술(Graffiti Art)을 길거리 담벼락에 끄적거리는 "수준 낮은" 행위라고 한다면 미켈란젤로의 성당 벽화는 "수준 높은" 행위가 될까? 사실 그 둘은 "수준"으로 나눌 수 없는 각자의 예술 분야이다. 이 예술분야를 "수준"이라는 잣대를 만들어 나누는 것 부터가 이해의 부족인 것이다. 뱅크시가 커다란 성당 벽에 자신의 작품을 남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작품이 담벼락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작품을 길 담벼락에 남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잘 그린 낙서로 생각될 수는 있어도 보존되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자신들의 작품을 남겼다면 그들은 인정받지 못 했을 것이다. 길거리 예술은 길거리에서 빛을 발하고 실내 예술은 실내에서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처럼 어디에 있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가 중요하듯 사람도 내가 누구와 어울릴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수준 높은" 사람들끼리 만난다 하더라도 서로 이해하지 못 하고 같이 할 수 없다면 친구가 될 수 없다. 더더욱이 그런 사람들끼리 가족이 된다는 것은 불행을 위한 노력이 될 것이다.

자연을 보면 수준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는다. 서로 어울리는 존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있을 뿐이다. 강에는 갈대가 있고 산에는 억새가 있는 것이다. 온천수가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민물가재가 온천에서 살 수는 없다. 더러운 물에서 사는 모기 유충들도 기름으로 오염된 물에서는 살 수가 없다. 초원에 사는 동물은 산 속에서 살 수가 없다. 땅 밑으로 자라는 뿌리가 땅 위로 올라오면 말라 죽는다. 어떻게 해야 어울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어떻게 해야 수준을 맞출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준"이라는 단어는 인간만이 따지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인간의 허영심과 지배욕에 대한 표출일 뿐이다.








덧글 - 중간에 쓰다 몇 일 간격을 두고 다시 써서 앞 뒤가 맞을지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