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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7 - 1등과 꼴찌, 등수 매기기

그냥보기 2011. 8. 8. 03:04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요즘 즐겨보는 TV 방송이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가수들끼리 경연을 하는 정규방송이다.
이 방송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자세한 사항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쨋든 이 방송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부터 나를 가장 심란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등수를 매기는 것이었다. 나처럼 비전문가가 등수를 정해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는 등의 저자세를 취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각의 가수들이 장단점이 달라 듣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뿐이지 누구는 못 하고 누구는 잘 하고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씩 가수들의 상태에 따라서 누군가 좀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누군가 제 실력에 미치지 못 하는 경우가 있기에 등수를 매길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연이기때문에 그런 운에 따라서 누군가는 탈락하고 다른 이들은 남아서 다음 경연에 참가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아니더라도 한 명은 탈락을 하고 다른 가수가 다음 경연에 참가하게 되는 것에는 사실 큰 불만이 있지는 않다. 다른 가수들에게도 대중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고심 끝에 선택한 방편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이 등수 매기는 것에서 혼란을 느낀 것은 이러한 진행때문이 아닌 가수들에게 등수를 부여하는 평가단들때문이었다.

TV를 보다가 보면 참 예의바르고 겸손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특히나 남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 하는 배려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의해서 누군가는 꼴찌라는 불행을 당해야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들은 꼴찌를 고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꼴찌를 고를 수 없다", "그 누구도 탈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등의 말이 유행이다. 누가 1등을 할 것 같냐는 말에는 서슴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지목한다. 그러면서 누가 꼴찌를 할 것 같냐고 물으면 다들 너무 잘해서 판단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더 나아가 꼴등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성인군자같은 말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다.
참으로 궁금한 것은 1등은 그렇게 쉽게 잘 골라내면서 꼴찌는 왜 매번 그렇게 골라내기 힘든 척을 하냐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누군가를 꼴등이라고 부르는 것도 힘들지만 저 중에 1등을 뽑는 것이 더욱 난해하다. 게다가 꼴등이 없다면 사실 1등도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누구도 꼴찌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다들 잘 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저 중에 누구 하나만 특출나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누구라도 1등이 된다면 누군가는 홀로 꼴찌가 되거나 공동 꼴찌가 되어야 한다. 7명 중 1명의 1등만 있고 나머지는 비슷했다면 그 나머지들이 꼴찌들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1등이 있으면 꼴찌는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1등이 없다면 꼴찌도 없다. 1등이 6명일 수는 있다. 그러면 나머지 한 명은 꼴찌가 된다. 마찬가지로 1등이 1명이라도 있다면 꼴찌는 반드시 존재하게 된다. 꼴찌가 1명이든 2명이든 6명이든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1등은 "누구"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꼴찌가 누구냐를 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1등이 누군지를 답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누가 꼴찌일 것 같냐?"라고 물었을 때 답을 얻기가 어렵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가 한 가지 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탈락하는 가수가 사람들이 매긴 등수때문에 탈락한다고 보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평가단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매긴 등수 중 1위부터 3위까지에게만 동그라미를 칠 수 있다. 나머지 4위부터 7위까지는 1위부터 3위까지가 똑같이 한 표를 얻는 것처럼 똑같이 한 표를 얻지 못 한 것 뿐이다. 그러니까 1등이라고 생각한 가수에게 100점을 주고 2등이라고 생각한 가수에게 99점, 3등이라고 생각한 가수에게 98점을 준 사람이 자신이 4등이라고 생각한 가수에게는 97점을 주고 꼴찌라고 생각한 가수에게 (극단적으로 생각했을 때) 0점을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97점을 받은 가수와 0점을 받은 가수는 똑같은 취급을 받은 것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가수를 4~5위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 가수는 실제로는 중간 정도의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득표수에서는 꼴찌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가수는 꼴찌일리가 없다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탈락을 하는 것이다.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새기는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등수를 매긴다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숫자로 점수를 계산하기에 그 점수는 숫자가 될 것이다. 점수가 숫자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쉽게 10점 만점이나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여 등수를 정했다고 했을 때 1등부터 꼴찌까지에는 점수차라는 것이 생긴다. 이 점수라는 것을 매기기 시작하면 똑같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 경우 각자의 등수가 결정되게 된다. 몇 명은 똑같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면 한 등수에 여러명이 모이는 결과도 나온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점수가 아닌한은 1등이 존재하고 꼴찌도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1등이 누구일 것 같냐?"라고 물었을 때 1등이 누구라고 답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각각의 가수들에게 점수를 부여했다는 말이다. 정확하게 몇 점이라고 정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대충 몇 점대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10000점을 만점으로 생각한 사람이 누가 1등이라고 생각하는데 꼴등은 누구라고 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면 그 꼴등에 포함될 수 있는 후보가 비슷한 점수에 분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10000점을 100점이나 10점으로 압축한다면 어떨까? 아니면 7명이 경합하는 방송이니 7점으로 압축한다면 어떨까? 결국 꼴등 경합에 있었던 후보들은 같은 점수가 될 것이다. 그러니 1등이 있으면 꼴찌가 있게 되고 꼴찌가 있으면 1등이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나의 말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다. 7명을 반드시 7점을 만점으로 압축해서 생각해야 할 필요도 없고 만점을 1억의 1억제곱으로 생각하여 점수를 나눌 수도 있기때문이다. 내가 이런 점수놀이를 이야기한 이유는 과연 그들이 매긴 것이 그들의 노래에 매긴 점수냐 하는 것에 대한 의문때문이다. 등수를 물어볼 때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기호나 편견에따라 그 등수를 나누기때문이다. 신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신나는 노래에 더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된다. 예쁜 여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예쁜 여가수에게 더 후한 평가를 하고 싶어한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면 우선 그 가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노래를 듣게 된다. 반대로 싫어하는 가수라면 편견을 가지고 노래를 듣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은 지식을 가지고 노래를 평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저음을 잘 들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고음을 잘 들을 수 있다. 어떤 가수는 고음이 선명하고 어떤 가수는 저음이 매력적이다.
어떤 물건은 오른손잡이에게 편하고 어떤 물건은 왼손잡이에게 편하며 또 어떤 물건은 양손 모두에 큰 불편함이 없다면 이 중 어떤 물건이 가장 훌륭한 물건일까? 아니면 어떤 물건이 가장 형편없는 물건일까? 이건 간단하게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단지 필요에 따라 선호하는 방향이 다를 뿐 아닐까?

사람들은 등수 매기기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자꾸 우열을 나누려 한다. 특히나 1등이라는 것에 집착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남에대한 배려심이 있다고 보여지고 싶어서 꼴찌에게 박수를 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봤을 때 그건 단순한 적선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잘나기는 했지만 내게는 배려심이 있으니 비록 니가 꼴찌일지라도 그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박수를 쳐주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꼴찌에게 박수를 치는 것은 저급한 동정심에 불과하다는 말은 아니다. 1등에 집착하고 등수 매기기를 좋아하면서 꼴찌를 경멸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들보다 우위에 있고 싶어하는 마음이 1등이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1등을 골라내듯 꼴찌를 골라내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닐까? 누군가를 1등으로 세우려면 누군가는 꼴찌로 내쳐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1등이나 꼴찌를 나누는 것은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위에 말한 것처럼 1등이라는 자리에 연연하는 인간 풍토가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자신이 1등이 되기를 집착하기에 무슨 일이든 1등과 꼴찌를 나누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1등을 뽑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꼴찌를 뽑는 것도 자연스럽다. 꼴찌를 정할 수 있다면 1등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1등을 뽑는 사람들이 꼴찌를 뽑을 수 없다거나 그 누구도 꼴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것은 가식이다. 마치 자신이 착한 사람인양 행동하는 것이다. 등수를 정하려면 확실히 하고 그렇지 않다면 등수를 매기지 마라. 혼란스럽게 중간에 등수를 사라지게 하는 마술은 보고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