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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 감성과 폭력

그냥보기 2016. 11. 9. 09:23

이름 있는 건축물, 멋드러진 조경의 나무, 역사적인 현장, 명소

요즘 웬만한 곳에는 다양한 이름과 낙서가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려 했을까?


동화나 옛 이야기에서 서로의 이름을 적고 미래를 약속하는 장면을 종종 보고는 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감성적 동요를 느꼈으리라.

아마 이러한 기억의 작용으로 사람들은 어딘가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며 그러한 감성을 다시 느끼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감성일까?


새겨진 이름이나 문구를 보면 때로는 저속한 표현이 남발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장소를 보면 굳이 이곳에 이러한 행동을 해야만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도 가끔은 내 이름을 새겨두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이곳에 우리들의 자취를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쉽사리 그러지 못 하는 까닭은,

단순한 나의 욕심은 아닌지, 내가 이곳을 망치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정말 내게 의미로 남겨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명 '~데이'라는 기념일도 아닌 기념일들을 싫어한다.

마치 그날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싫거니와

그날이 사실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던 것을 억지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싱글남의 변명과 시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순히 상술에, 유행에,  스스로에게 없는 낭만에 기대기위한 심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함께 길을 걷다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둘만의 장소를 발견하고는

서로가 그리워질 때 서로를 그리워할 장소로 그곳에 서로의 이름을 새겨두는

그런 운치가 없다.

그런 행동이 혹여 옳지 못 한 행동은 아닐까 하는 도덕적 의심도 없다.


단순히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내게는 그렇게 보여진다.

어떤 낭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낭만을 모방하기 위해서

혹은 나도 해봤다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남산의 자물쇠는 누가 처음 시작했을까?

아마도 누군가가 센느강의 자물쇠를 따라했던 것은 아닐까?

그럼 센느강의 자물쇠는 누가 시작했을까?

그런데 누가 시작했는지가 중요할까?

처음 자물쇠를 걸었던 사람들은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 자물쇠의 첫 주인공이 나였다면

나는 지금의 사태를 보면서 너무나 참담한 마음이 되었으리라.

나의 낭만과 추억이 망가짐을

수 많은 쓰레기 더미에 묻혀 사라짐을

함께 자물쇠를 걸며 약속을 나눴던 그 사람에게 너무나 미안함을 느꼈으리라.


어느샌가 누군가의 감성은 다수의 폭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감성에 젖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던 이에게

감성을 느끼고자 그곳을 찾아온 이에게

그들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